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라야마 도미이치 (문단 편집) === 총리 재임 시절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rz33vspgUrQ)]}}} || [[1994년]] 6월 [[오자와 이치로]]가 조종하는 연립여당은 자민당의 [[가이후 토시키|카이후 토시키]] 전 총리를 수반으로 옹립해 [[자유민주당(일본)|자민당]]의 분열을 통한 정권 유지를 도모한다. 그러나 '''자민당은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중앙집행위원장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정권의 수립을 결정하고, 여기에 오자와의 노선과 대립하던 [[신당 사키가케]]가 참여하면서 자민당과 일본사회당, 신당 사키가케가 연립한 [[무라야마 내각]]이 발족'''했다. 당시만 해도 자민당은 [[미야자와 기이치]], [[고노 요헤이]] 등의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[[보수본류|온건 보수]] 세력이 주도하는 상황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오자와의 신당 세력보다 더 진보적인 부분도 있었다.[* 오자와는 2003년 민주당 합류 이후로는 큰 정부, 혁신 성향, 역사반성주의 색채를 짙게 나타냈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작은 정부, [[신자유주의]], 우익적 성향을 다분히 드러냈다.] 무라야마는 총리로 취임한 직후의 국회 연설에서 기존 일본사회당의 당론인 비무장 중립정책을 폐기하면서 미일 안보조약의 긍정을 표명했다. 이 노선전환은 당시 자민당과의 연립과정에서 일본사회당 내부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발표한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일보사회당은 내각 출범 초기부터 내분에 휩싸여 분당이나 해산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.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5년 [[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|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]]에서 일본사회당이 크게 패하면서 당내 지도력을 상실한 무라야마는 결국 [[1996년]] 1월 11일에 내각 총사퇴를 발표하고 정계에서 물러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